예전에 종교인이 원장을 맡은 요양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종교활동을 제외한 일반인과 일을 한다는 것 특히나 직업으로 근무를 한다는 것은 처음인 분이셨다.
정말 열심히 하시는게 눈에 보이는 분이었고 개인의 편안함, 수입 등등은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분이셨다.
몇년 같이 근무하면서 지켜 본 바로는 그분 개인의 월급을 털어서 보호하고 있던 할머니께 제철 과일 제일 첫물로 나오는 과일을 사서 간식으로 드리는 모습도 봤다.
원래 과일은 첫물로 나오는 것이 제일 비싼데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물건들.
요양원이기에 국가에서 내려오는 운영비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보호 중인 어르신들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월급을 탈탈 털어서 대접을 했었다.
어르신들 입맛이 없다고 한우 육회를 대접하고 기력 떨어지신다고 자연산 전복을 미리 주문해서 전복죽을 끓이고.
요양원이라는 시설에서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식사를 대접했었다.
물론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다.
간단하게 사 먹어도 되는 된장, 간장을 직접 담궈야 했고 오이지, 제철 재료를 이용한 장아찌도 담궈야 했다.
하지만 보호중인 어르신들께 좋은 음식을 제공 하고 싶다는 원장님의 의지는 직원들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원장님 월급에서 비싼 식재료비가 지출 되는 걸 난 바로 옆에서 봤으니까.
국가에서 내려오는 식재료비, 관리비, 운영비에서 초과되는 달에도 원장님은 직원들을 다그치지 않으셨다.
본인의 월급으로 채워 넣고 주변 종교 시설들을 찾아서가 후원을 받아 오셔서 채워 주셨다.
그런 원장님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원장님 밑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각자의 맡은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 직원들은 본이의 일이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면 칼 같이 퇴근을 해도 되었고 남아서 다른 직원을 도와줘도 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지극히 일반인들로 구성된 직원들은 맡은 일에 따른 업무 스타일, 개인의 일 처리 속도 등을 이해 하지 않은 채 본인만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 다는 것이다.
같은 업무를 같은 시간에 하는데 어떤 직원은 일찍 끝나고 어떤 직원은 늦게 끝나고 또는 완성도가 높고 낮고 등등 차이가 있다.
그럼 그 상황 상황에 따라 직원들에게서는 불만이 나온 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업무를 함에도 상대적으로 본인이 불합리한 일을 한다는 또는 근무 여건이 나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맡은 업무를 모두 끝내고 잠시 쉬면 다른 업무를 보던 직원이 나는 바쁘고 힘든데 너는 일도 적고 쉽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많은 불만들을 종교인이던 원장님은 이해를 못하셨다.
본인의 일이 빨리 끝나면 일이 덜 끝난 직원을 도와주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본인의 일이 끝난 거니 일이 덜 끝난 직원은 그냥 조용히 본인의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불만이 나올 필요도 없고 서로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참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면서 상황을 만들어간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면서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대 전제 아래 각자의 업무가 나뉘어 있지만 나뉘어진 업무에 대한 불만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동경 또는 상대적 박탈감은 아주 큰 작용을 한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은 일이 빨리 끝나서 쉬고 있구나 또는 나를 도와 주지만 그건 일이 나보다 쉬우니 도와줄 수 있는 거지. 그러니 내 일이 너무 힘들어.
난 손도 빠르고 일에 대한 숙련도도 높고 이해력도 좋아서 일이 빨리 끝났지만 저 직원은 왜 아직도 저 일을 끝내지 못한 것인가. 내일이 끝났다고 해도 무작정 놀 수는 없으니 도와주기는 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 일이 많아 지는 거잖아.
이런 각자의 생각들이 뒤엉킨다.
그 부분을 전혀 이해 못하시는 원장님이셨다. 종교인이라는 특수상황이라 내 일이 끝나면 도와주면 되는 것이고 도움이 오지 않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니 혼자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일반 직원들을 바라보니 직원들 간의 뒤엉킨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 난 또다시 예전과 비슷한 상황을 만나야 했다.
A파트와 B파트. 분명 근무 조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여건도 다르다.
난 A파트 소속. 그리고 중간관리 업무를 한다. 그러다보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은연중에 A파트에 대한 커버, 지원등을 소소하게 챙기는 편이다.
난 A파트에 속하지만 내 책상이 현장이 아닌 사무실에 있으니까. 사무실 분위기를 보면서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A파트에서 나오는 여러 잡음들을 모아서 순화해서 조용히 처리를 하고 소소한 편리를 봐 주니까.
그런데 B파트는 나와 같은 역활을 할 사람이 없다.
모두 현장에서 근무를 한다.
그러니 여러 이야기들이 들쑥 날쑥 튀어나오고 그 소리들은 여과없이 사무실로 전달이 된다.
당연히 사무실에서는 B파트가 조금 시끄럽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A파트에서 기존의 틀을 조금 흔드는 일을 저질렀다. 나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계획하고 나를 건너뛰고 사무실 인가까지 받고 나에게 통보가 되었다.
다른것 모두 다 떼어놓고 A파트 하나만 본다면 분명 좋은 일이고 권장할 사항이다. 그런데 문제는 B파트.
그들도 A파트와 같은 행사를 가지고 싶으니까.
당연히 B파트 내에서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혜 라는 말에서 부터 우리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중간에서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난 A와 B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어야 했다.
또한 최대한 언성도 높이지 않아야 하고 되도록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다독이며 두 파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했다.
A, B파트 모두 감정이 격해져서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들. 그 들을 달래느라 난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어제 저녁 나 감정은 폭발했고 그 폭발이 내 바로 위의 상사에게 터졌다. 그가 교통정이를 제대로 안 해서 그리고 섣불리 모든걸 오케이 해 버려서 이런 상황이 벌어 진 것니까.
오전에 폭발하고 오후에 관장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또 난 답답한 상황에 마주쳐야 했다.
관장의 대답은 아주 원론적이었다.
업무가 다르고 근로가 다르니 상대에게 제대로 잘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면 된다. 서로 불만을 가질 사항은 아니다. 만약 직원들이 불만을 이야기 하면 나에게 보내라. 내가 설득하겠다.
이상향이다. 그 말은.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직원들이 관장에게 바로 직접 찾아가는 것도 힘들고 관장이 이렇다고 이야기 하면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야 한다.
그게 직원의 이해를 제대로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관리자는 현장에서 근무해 보지 못했던 관리자는 제대로 이해시키고 설명한 것이라 받아 들인다.
결국 10년도 더 전에 경험했던 종교인 원장님과 비슷한 생각.
넘어 설 수 없는 벽. 난 여전히 일 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내 바로 위의 상관의 어설픈 결정들에 이리저리 뒷처리를 하고 다녀야 한다.
현장 경험을 해 보지 못한 관리자들은 현장의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서운함을 쉽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몸이 힘드니 서로 다른 입장에서라도 단 하나의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도 손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없으니까.
현실은 언제나 직설적이고 직관적이고 상처를 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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