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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2023년 11월 15~19일 JR북큐슈레일패스를 이용한 여행-나가사키 평화공원(fit.원폭조선인희생자추도비,원폭자료관)

by 혼자주저리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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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일차가 되었다. 

이 날은 아침일찍 짐을 정리하고 난 다음 체크아웃을 하고 케리어는 호텔에 맡겨두고 조식을 먹은 다음 나가시키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숙소 이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토요일 숙박은 풀로 예약이 되어 있어서 앞서 3일은 하카타 역 바로 옆의 숙소를 예약하고 마지막날 토요일 숙박은 하카타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떨어진 숙소로 예약을해서 나가사키를 다녀 오고 난 다음 이동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여전히 7시에 아침을 먹고 하카타 역으로 가서 나가사키로 이동을 하기위해 움직였다. 

나가사키는 하카타에서 바로 가는 신칸센은 없었다. 

하카타역에서 특급 릴레이카모메를 타고 타케오온센역에서 하차해서 신칸센 카모메로 환승을 해야 하다. 

릴레이카모메를 그대로 타고 있어도 나가사키까지 가지만 신칸센으로 환승하면 아마도 30분 정도 시간이 단축 된다. 

위 사진의 왼쪽은 하카타역 릴레이카모메를 탈 수 있는 승강장에 있던 자유석 매표기이다. 

승강장 안에 저런 매표기가 있다니 싶어서 사진을 찍어 봤다. 

오른쪽 사진은 다케오온센역에서 찍은 카모메의 앞부분이다. 

아침에 릴레이 카모메에서 하차하면 바로 승강장 반대편에 카모메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었지만 하카타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에는 나가사키 역에 대기중인 카모메가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헤드라이트 부분에 눈화장을 해 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릴레이카모메, 카모메 모두 자유석을 이용했다. 

JR북큐슈레일패스로 6번까지는 지정석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정석을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자유석도 항상 좌석이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없이 이용이 가능해서 자유석 이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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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불편한 것이 일행들과 가끔 떨어져 앉아야 하는 건데 어차피 열차 내에서 대화하기는 힘드니 떨어져 앉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릴레이카모메와 카모메를 환승해서 도착한 나가사키역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하지만 역사가 크고 쇼핑몰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도 했다. 

나가사키역 앞 노면전차 승강장의 모습이다. 

이날도 우리는 버스가 아닌 노면전차를 이용해서 나가사키 내에서 이동을 했다 

나가사키 역에서 노면전차 승강장으로 가는 길에 육교가 있는데 그 육교 위에서 노면전차 승강장을 찍기 좋은 곳이 있었다. 

오전에는 살짝 핀트가 안 맞는 사진이 찍혔는데 오후에 찍은 사진이 더 잘 나와서 오후에 찍은 사진을 올려 본다. 

나가사키의 경우 나가사키역에서 평화공원까지 노면전차를 이용하고 그 뒤로 도보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주변을 돌아 볼 예정이었기에 일일 승차권을 따로 구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날 노면전차를 세번을 이용했기에 일일승차권을 구입했어도 좋을 뻔 했다. 

노면전차 역시 버스와 마찬가지로 뒷문으로 승차할 때 IC카드를 찍고 앞문으로 내릴 때 IC카드를 찍으면 되니 교통카드 한장을 지갑 외부 카드 수납칸에 넣어두고 편리하게 이용했다. 

나가사키역 노면전차 정류장에 보면 평화공원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온다. 

평화 공원 방향으로 된 승강장으로 가서 노면전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을 하고 난 다음 평화공원에 하차를 하면 된다. 

노면전차에서 하차를 하면 평화공원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길이 복잡거나 어렵지는 않다. 

평화 공원 옆으로 큰 운동장(야구나 축구 경기장 같았다)이 있었고 이날 그 운동장에서 무언가 행사가 있었는지 방송으로 행사 진행하는 목소리가 다 울렸었다. 

하늘은 얼마나 높고 청명한지. 

여행 일정 내내 나가사키에 비예보가 있다가 일정 마지막날만 비가 없었다. 

덕분에 여행 첫 목적지인 나가카시가 이렇게 마지막 목적지로 변경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평화공원 입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분수대가 있다. 

이 분수대가 평화의 샘이라는 이름(맞을거다)인데 이 순간은 이름도 없이 그냥 사진을 찍었다. 

평화의 공원은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인 듯 하고 여러 의미로 평화라는 단어들을 내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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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그들이 원폭 피해를 입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세계 2차 대전의 시발점이 그들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내가 일어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못 찾은 걸 수도 있지만 이들은 원폭으로 인한 아픔, 슬픔등 피해에만 집중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다. 

평화공원 제일 꼭대기에 있는 평화의 상. 

멀리서도 너무도 잘 보이는데 오른손과 왼손이 의미하는 바가 다 따로 있었다. 

평화의 기념상 작가의 말

저 악몽같은 전쟁

소름 끼치는 처절함과 비참함

육친을 남의 아이를

뒤돌아보는 것 조차 견디기 힘든 심정

어느 누가 평화를 바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곳에 전 세계 평화 운동을 선구하기 위하여

이 평화 기념상이 탄생되었다

산과 같은 지혜

그것은 강인한 남성의 건강미

전체 길이 삼십이여 척

오른손은 원폭을 왼손은 평화를 가리키며

얼굴로는 전쟁으로 희생된 자의명복을 빈다

이는 인종을 초월한 인간

때로는 부처, 때로는 신

나가사키가 시작된 이래 최대의 영단과 정열

이제는 인류 최고의 희망의 상징

 

평화의 공원에는 중간중간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일일이 사진으로 다 남기기에는 작품이 많았고 그 중에서 나에게 인상 깊은 작품 하나를 사진으로 남겼다 

작가의 의도는 정확하게 읽을 줄 모른다. 

하지만 저 작품을 보는 순간 뭔가 내 가슴에 평상시와 다른 감정이 차 올랐다.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 싶기도 했지만 뭐 내가 좋으면 좋은것 아닐까? 

평화공원을 내려 오면 폭심지 공원이 있다. 

이 곳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 둔 것으로 중심의 저 검은 기둥이 세워진 곳에 폭탄이 떨여졌다고 했다. 

저 곳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쪽으로는 나무들이 있어서 중심을 더 강조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여성이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동상은 슬픈 표정과 옷에 흐드러지게 달려있는 꽃송이 그리고 축 늘어져서 안겨있는 아이의 모습은 그 당시의 참상을,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는 이 순간은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전쟁과 상관없이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에 피해를 입은 슬픔이 있었다. 

위의 중앙의 사진은 원폭의 피해로 무너진 건물의 일부분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있었다. 

이 추도비를 찾아서 한참을 헤맸고 거대하고 눈에 띄게 있던 다른 추도비와 동상들에 비해서 조그마하게 구석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울컥했다. 

이 조차도 없었으면 어쩔뻔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울컥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캔으로 된 막걸리 하나를 미리 구입해서 일본으로 가지고 갔었다.

예전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본 사진들 중에서 추도비 앞에 소주병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생수병이 놓여 있었는데 그 중에 놓인 소주병. 

그 병을 봤던 기억이 남아서 난 막거리 캔을 준비했다. 

생각같아서는 캔이 아니라 병으로 된 막걸리를 구입해서 가고 싶었지만 발효주 특유으 특성으로 비행기 기압차를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막걸리 캔으로 대체했다. 

생수병 사이에 놓여있는 작은 막걸리 캔. 

저것 하나 올리고 잠시 묵념을 하고 이 곳을 돌아서 나왔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폭심지 공원 옆에 있었다. 

평화의 공원이 가장 위쪽이고 폭심지 공원이 있고 그 옆에 자료관이 있었다. 

이 곳은 1인 200엔의 입장료가 있었고 자판기로 구입을 할 수 있었다. 

입장권을 구입해서 안 쪽으로 들어가면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을 할 수 있는데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이던 간에 원자폭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으며 피해를 입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 시대의 상황들이 남겨진 자료관을 보면서 사진을 찍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숙연하게 내부 자료들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고등학생들 단체 관람이 같이 있어서 내부에 사람이 많이 있어서 천천히 자료를 돌아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지만 소란스러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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