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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속앳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간극의 차이가 너무 크다

by 혼자주저리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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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딸 셋인 집에서 장녀로 컸다. 

어릴 때 형편이 좋지 못했던 우리는 방 하나에 딸 셋이 같이 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건 하지 않았고 각자의 이불을 깔고 덮고 각자의 공간(책상이라던지 작은 상자라던지)이 있었다. 

문제는 나만의 공간인 책상이 동생들에게는 보물창고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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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에게는 궁금하고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었던 공간이 내 책상이었고 학교에 일찍가고 늦게 오는 그 당시 학교 교육의 패턴에 동생들은 나 몰래 내 책상을 뒤져 보곤 했다. 

그리고는 그들 눈에 신기하고 이쁜 것들이 참 많았을테고 그것들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면서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만져 본 것들은 동생들 입장에서는 최대한 처음과 같이 놔 두는 노력도 했을 거다. 

문제는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내 눈에는 살짝만 틀어진 것도 보였으니까. 

야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책상의 상황이 내 눈에 조금이라도 삐뚤어 진 곳이 있으면 동생들에게 난리를 친 기억은 있었다. 

소리도 지르고 야단도 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적당히 하라고 동생들에게는 아무리 속상해도 언니라는 호칭은 꼭 붙여서 이야기 하라고 한 정도로 그닥 자매 사이에 개입은 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동생은 어떤 상황에 들어가도 나에 대한 호칭은 언니였고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고 난 동생들에게 폭군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동생들은 부모님보다 나를 더 무서워해서 평소에도 엄마가 야단치면 적당히 받아 들이다가 내가 뭐라하면 군기가 빠싹 들어가는 그런 관계로 자랐던 것 같다. 

기억속의 난 그런 폭군으로 남아 있는데 얼마 전 미국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내가 몰랐던 모습을 듣게 되었다. 

미국 동생의 말에 의하면 동생은 나한테 엄청 혼나면서 자랐다고 했다. 

심지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팔을 들고 벌을 서기까지 했단다. 

난 전혀 기억에 없는데 동생은 그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동생 말에 의하면 그 일은 동생이 학교에서 성적표를 가지고 온 날 내가 그 성적표를 확인하면서였다. 

동생의 성적표를 확인 한 난 갑자기 펄펄 뛰면서 동생을 야단치고 심지어 무릎 꿇리고 벌을 서라고 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옆에서 그만해라. 애 잡겠다고 딱 두마디 했는데 그 때 내가 부모님께 고개를 획 돌려보더란다.

그러고는 "엄마, 아빠가 그러니 애 성적이 이모양 이꼴이지."라고 했단다. 

부모님도 그 순간에는 나에게 아무말 못했고 동생은 그대로 벌을 섰다네.

난 그 상황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내 기억속에서 난 내 물건을 만지는 동생들에게 짜증을 심하게 내는 폭군이었을 망정 성적표를 가지고 뭐라고 야단을 한 일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들이 부모님보다 날 더 무서워했다는 건 기억을 하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성질을 있는대로 부려서 그런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동생 말에 의하면 내가 물건때문에 성질 부린건 기억에 없는데 나에게 성적표로 야단 맞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고 그래서 부모님보다 언니가 더 무서웠다고 하더라.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럽게 언니한테 벌을 섰던 동생의 기억이 더 정확할 거리는 생각은 들지만 내가 그랬다니. 

동생이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 줬다고 한다. 

그러자 우리 딸 왈 "헐? 엄마가? 전혀 그럴 사람 아닌데? 나 성적으로 엄마한테 혼나 본 적 없는데? 오히려 엄마 친구가 내 성적표 관리를 했는데?"

이러더란다. 

난 딸의 성적표로 아이에게 야단을 쳐 본 적은 없다. 

야단을 안 치니 성적이 잘 나와도 잘했다 한마디는 해도 그 외의 칭찬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딸의 성적이 좋으면 그 당시 만나던 딸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밥을 사거나 음료를 사면서 잘 나온 성적에 대한 축하를 했었다. 

그 상황에 딸이 내게 "엄마는 왜 내가 성적을 잘 받았는데 나한테 선물은 안 해 주고 다른 엄마들한테 밥을 사?"하고 물었었다. 

그때 내 대답은 네가 성적 좋을 때 선물 받으면 성적 나쁠 때는 야단 맞을래? 였고 딸의 답은 야단은 안 맞을래였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네가 성적 올라서 기분 좋은 건 좋은 걸로 하고 친구 엄마들에게 밥을 사는건 기분 좋은 걸 주변에 기분좋게 알려 주는 거다. 했더니  수긍하고 딸의 학창 시절은 넘어갔었다. 

그런데 내가 동생에게 성적으로 그 난리를 쳤었다니. 

기억에 없으니 다행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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