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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일기/성장통

어린 아이라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by 혼자주저리 2016.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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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 딸의 맏이로 자랐다.

어린 시절 우리집은 세 딸들에게 각자의 방을 하나씩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까지 나의 증조할머니께서 우리집에 계셨었고 안방은 따로 분리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두개의 방 중에서 하나에는 나와 할머니가 지냈고 안방에서 동생과 부모님이 잠을 자야 하는 현실이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방 하나를 딸 셋이 같이 사용해야 했다. 나랑 바로 밑의 동생이랑은 세살의 차이였지만 막내랑 나랑은 무려 아홉살이 차이가 나는,강산이 한번 변할 수 있는 세월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엄마는 그나마 딸들의 독립적인 성향을 위해 이불은 각자 따로 준비를 해 주셨었고 책상도 나에게는 따로 마련해 주셨다. 막내야 나이가 어렸으니 책상이 필요 없었고 바로 밑의 동생에게는 밥상을 펴서 책을 읽도록 시켰었다. 동생은 그나마도 안하고 놀기 바빴기에 책상에 대한 필요는 없었다. 단지 내 책상에 대한 호기심만 잔뜩 있었을 뿐이었다.

한참 사춘기를 지나던 나는 나만의 공간이었던 책상과 서랍에 갖가지 아이템들을 모아 숨겨뒀었다. 문구류, 스티커 등등 그 당시 여자아이들이 열광하던 모든 것들이었다. 문제는 같은 방을 쓰던 동생들도 그 작은 아이템들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동생들은 내가 학교에 가고 없을때 내 책상을 뒤져 모아 뒀던 것들을 꺼내어 만져보고 뒤집어 보며 가지고 놀고 내가 집에 오기 전에 처음 꺼냈을 때 마냥 제자리에 두곤 했었다. 하지만 난 내 책상 앞에 앉는 순간 동생들이 내 물건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항상 눈치챘었다. 그럴때마다 난 있는대로 소리지르며 동생들을 향해 야단을 치고 동생들은 울다가 결국 둘째가 막내를 데리고 부모님께 도망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었다.

그때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도 멋진 사람이 되는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것 하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기억이 강했던 나는 다꽁에게는 그런 기억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일을 해야 함으로써 유아기부터 초등 저학년때까지 아이의 양육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했던 나는 그 기간동안 친정에 얹혀 살았다. 내가 출근하고 난 뒤 친정 엄마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 보내고,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챙겨서 간식 먹이고 저녁까지 먹인 후면 난 퇴근을 하는 기간이었다.

친정에 얹혀 사는 동안에 다꽁에게 방을 따로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꽁이 유치원에 들어 갈 즈음에 다꽁의 책상을 중고등학생이 사용해도 될 만큼 크고 서랍이 많으며 책상위에 올라가는 책꽂이도 큰 걸로 구입을 했다. 다꽁과 사용하던 방의 한켠에 두고 친정 부모님 이하 모둔 식구들을 불러모아 이 책상은 다꽁만의 공간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손대지 말라고 했다. 다꽁만 만지고 관리하라고 했다. 심지어 친정엄마에게는 책상은 청소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꽁의 책상은 책상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잡동사니가 산처럼 쌓이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친정 엄마는 그 모습에 답답해 숨이 막힌다고 까지 했지만 절대로 청소도 하지말고 정리도 하지 말라고 했었다.

다꽁은 그 공간은 어른들이 전혀 건들이지 않는 정말 자신만의 공간인 것을 알게되자 책상 위에 물건을 올려두고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설날 세뱃돈으로 받은 꽤 많은 돈도 책상 위에 던져 놓고 며칠, 일기장도 올려두고 누가 보는지 안 보는지 신경쓰지 않고 며칠,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던 것들도 책상위에 방치되는 상황들이 벌어졌다.

난 다꽁 몰래 일기장을 읽어보고 다꽁이 숨기고 싶어 하던 것도 봤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전혀 그 공간에는 터치를 하지 않는다고 믿어버린지 오래라 전혀 엄마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다꽁에게 책상은 완전히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예전의 난 책상의 물건을 동생들이 만졌다는 걸 바로 바로 알아챘지만 다꽁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친정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다꽁에게 방을 내 줄 수 있었다.

평소 방문을 절대로 닫지 않는 다꽁이지만 만약 다꽁이 문을 닫는다면 난 그 문을 절대로 열고 들어가지 않았다.

대체로 다꽁의 방문이 닫힌 날은 나랑 싸워서 감정이 좋지 않을 때지만 난 아무리 화가 나 있더라도 다꽁이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면 내 손으로 문 손잡이를 돌린 적은 없었다.

밥을 먹어라 할때도 문이 닫혀있으면 닫혀 있는 상태로 전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온 다꽁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곤 했다.

그렇게 다꽁만의 공간은 아이에게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다꽁의 방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잘 때도 열려 있다. 문을 닫고 자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꽁의 방은 발 디딜 곳이 없는 공간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여대생의 방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처럼 다꽁의 방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늘어져있고 정리되지 못한채 문을 활짝 열고 내밀한 속살을 보이고 있다.

한번씩 보다 못한 내가 방 정리좀 하라고 잔소리라도 할려면 다꽁은 나중에 라는 말로 순간을 모면한다.

그러다 본인이 결국 못견디겠다 싶으면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데 그때는 정말 다꽁이 내 딸인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치운다. 하지만 그 또한 일주일을 못 넘기고 바닥에는 가방이 서너개 늘어지고 책이 한줄로 비뚤빼뚤 쌓이고 침대위에는 옷들이 뒹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한숨 한번으로 그 순간을 넘긴다.

다꽁만의 공간은 정말 필요 하니까.

기숙사에 있는 지금 다꽁의 생활을 물어보면 집에서처럼 그렇게 엉망으로 어질러 놓은 채 생활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집에서만 저렇게 지내는 것이다. 그래서 더 참아 주고 있다. 아이의 공간을 인정해 주니 그 곳이 아이와 나 사이에 생긴 트러블로 답답해 질 때 서로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 되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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