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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한국

2020년 7월 15일 구례여행-비오는 날 우산 들고 노고단 오르기

by 혼자주저리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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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야생화연구소로 출장이 잡혔다. 

처음 계획은 당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연구소에 들렸다가 저녁에 돌아 오는거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1박 2일로 출장이 잡혔다. 

시간이 여유있으니 여행도 겸해야지 싶었는데 역시나 보스가 구례 갔으니 노고단 표지석을 찍고 오라고 미션을 내렸다. 

출장이 잡히면서 날씨를 확인했는데 출장 전 주만해도 예보상 흐림이지 비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출장 전날 보니 15일은 비가 예보가 되어 버렸다.

역시나 요즘 일기예보는 왜 이리 잘 맞는지 구례로 가는 내내 고속도로는 내리는 비와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흐림과 자동차 바퀴에서 튕겨 나오는 물보라로 시야 확보도 힘들었다. 

차를 가지고 가는 직원이 운전에 자신없어서해서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 한번 못 들리고 구례로 바로 달렸다. 

구례에 도착하자 마자 점심을 먹고 간소하지만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빵 하나 사 들고 야생화 연구소에서 볼일을 마쳤다. 

그때까지 비는 지속적으로 내리는 중이었다. 

야생화 연구소를 목표로 갔지만 우리 업무는 야생화 연구소가 아닌 구례농업기술센터의 직원이 봐 줘야 하는 일이라 그 직원을 소개 받고 직원에게서 설명을 충분히 들은 다음 성삼재를 향해 달렸다. 

차를 가지고 성삼재로 올라가는길은 마치 전설의 고향을 연상하게 했다. 

카메라에 찍힌 도로 모습은 괜찮아 보이는데 막상 실제로 봤을 때는 정말 섬뜩했었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어서 더 무서웠던 길. 

이렇게 우리는 짙은 운무를 뚫고 성삼재로 올랐다. 

성삼재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노고단 올라가는 길 입구로 향했다. 

노고단에 올라가기 전 화장실에 들렸는데 화장실 변기에 가득찬 거품은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냄새가 없는 것은 꽤 괜찮았다. 

변기 뚜껑을 열어 보기 전까지 아주 깔끔한 화장실 같았으니까.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에 접어 들기 전 관리사무소 같은 곳에서 노고단 표지석은 못 볼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 노고단 휴게소 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이때 시간은 3시 17분이었다. 

노고단 휴게소를 지나 노고단 입구에 4시까지 도착을 해야 표지석을 볼 수 있는데 휴게소까지가 1시간 넘게 걸리는 표지석은 못 본다고 단언을 하더라.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 휴게소? 대피소? 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이렇게 소방도로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도로를 따라 산책처럼 천천히 걷기는 좋지만 우리는 보스에게 미션을 받은 상황이었다. 

왠지 보스의 미션을 날씨 핑계 또는 시간 핑계로 완수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이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방 도로를 따라 급한 걸음으로 씩씩 대며 오르는데 중간에 소방도로를 가로지르는 나무 계단을 발견했다. 

이 계단을 오르면 조금 시간이 단축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계단을 선택하고 또 열심히 열심히 올랐다. 

계단을 다 오르면 다시 소방도로가 나와서 소방 도로를 따라 급하게 걷기. 

정말 주변을 볼 여력도 없이 무조건 열심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주변을 볼 겨를도 없이 오르다가 또 다시 만난 지름길.

탐방로 안내 사진을 보면 제법 긴 거리를 질러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번에도 시간 절약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 

산에 오르는 건 여유있게 주변을 보면서 자연을 만끽하기 위함인데 우리는 오로지 미션 달성이 목표로 주변을 전혀 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이 길을 처음 선택했을 때는 몰랐다. 

이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노고단은 예전 대학교 2학년때 친구들이랑 왔던적이 있었다. 

노고단이 목적이 아닌 쌍계사 계곡에서 민박을 하고 물놀이가 목적이었기에 랜드로버 단화를 신고 가벼운 쌕 하나 매고 갈아 입을 옷 한벌 달랑 들고 왔는데 진주에서 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화엄사로 오게되어 친구들이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노고단에 오르자고 해서 같이 올랐다. 

그리고 난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 울면서 친구들을 따라 억지로 걸음을 옮겼는데 이때가 등산을 태어나 처음 해 본 거였다. 

더군다나 친구들은 소방도로가 아닌 산길을 선택해서 질러 가는 길을 가는데 화엄사에서 노고단 산장까지 오르는 그 길은 정말 힘들었다. 

도와 줄 사람도 없고 친구들도 총 6명이었는데 그 중 2명은 등산을 잘 해서 앞서 올라가 버렸고 두명은 중간 그리고 나랑 또 한명의 친구는 울며 불며 친구들 따라 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위 사진의 저 코스에서는 결국 눈물 콧물 빼면서 두 다리로 못 걷고 네 발로 기어 올랐던 그 길이었다. 

미션 완수를 목표로 달리다보니 예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저 길을 오르는 순간 예전 생각이 떠 올라 버렸다. 

그때의 감정이 떠 오르면서 이 날의 어이없는 미션 완수도 겹쳐 이 순간 울컥했었다. 

난 앞으로도 노고단을 떠 올리면 울컥하는 감정만 떠 오르게 될 수 밖에 없을까? 

노고단 산장(예전에는 산장이라고 불렀었다)에 도착하고 노고단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가는 저 아치문을 4시 전에 통과하면 되는 줄 알았다. 

노고단 표지석으로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예약하고 블로그들을 찾아 볼 때 돌길 조금 지나고 예약 확인을 받고 나면 나무로 데크를 깔아 놔서 걷기 괜찮다고 했는데 저 곳을 지나도 데크는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뭐지 이건 뭐지 궁금해 하면서 저 곳에서 또 제법 올라가니 그제야 예약 확인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관리하시는 분이 지키고 서 있었고 예약후 받았던 큐알코드를 찍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내가 그곳에 큐알 코드를 찍은 시간은 3시 58분.

2분을 남기고 통과했다. 

성삼재에서 한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던 길을 비가 와서 우산을 쓴 채 달려 일단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었다. 

큐알 코드를 찍고 들어가니 나무로 데크가 깔려 있었다. 

노고단 표지석을 향해 올라가는 길. 

데크가 깔려 걷기 좋았지만 주변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서 걷는 직원 외에는 사람도 없는 상황. 

우리는 그렇게 비를 맞으며 표지석을 향해 걸었다. 

이때는 조금 여유가 생겨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노고단에서 보는 경치가 너무도 좋다는데 우리에게 보이는 건 운무 밖에 없었다. 

낮게 깔린 야생화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멀리 멋진 경치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내 눈앞의 아주 짧은 가시거리 내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노고단 표지석을 찍었다. 

사진찍기 싫어하는 나도 잔뜩 찡그린 얼굴과 비에 젖어 축 쳐진 머리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두번을 올랐지만 두번 다 주변을 즐길 여유 없이 올랐던 노고단. 

다음에 다시 오를 기회가 있을까 싶다. 

아마 자의로 다시 노고단에 오르지는 않을 듯 하다. 

다시 한번 새삼 느꼈다. 

나랑 등산은 맞지 않는 구나. 

나에게 등산이란 항상 뭔가 고난이 있었고 등산 자체를 즐길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힘들었던 노고단 등반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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