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명 길치이다.
한 두번 가 본 길은 절대로 혼자서 찾아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방향 감각이 좋은 것도 아니다. 방향 감각이 나쁘지 길치일 가능성도 높지만 하여튼 난 방향치에 길치이다.
어느 정도냐면 야외 주차장이 아닌 실내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갔다가 주차 자리가 없어서 입구와 달리 출구가 다른 방향으로 되어 있다면 그때부터 갑가지 모든 방향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네비게이션도 이때는 아직 위치를 잡지 못할 때라 무조건 직진 또는 무조건 우회전이다.
나중에 보면 주차장 출구에서 좌회전 하면 금방인 자리를 빙빙 돌아서 찾아 가는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적지가 오른쪽에 있으면 그때는 또 왼쪽으로 가고 있다.
나로서는 아주 신경써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건데 결론은 항상 다른 쪽으로 간다는 거다.
태어나 생전 처음 홍콩으로 자유여행을 갔을때 길을 찾는 건 항상 다꽁의 몫이었다.
지도도 챙겼고 블로그등을 통해 가는 길을 상세하게 설명도 찾아놨지만 결론은 항상 다꽁이 지도와 구글맵과 설명을 보고 목적지를 찾았었다.
신기하게도 다꽁은 한번 가 본곳은 두번째 갈때 정확하게 길을 찾지는 못해도 대략적으로 방향을 찾아 가면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홍콩에서도 매일 한번씩 지나갔던 IFC몰과 지하철 역은 갈때마다 난 헤메고 다꽁이 날 끌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오사카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는 시부야 다음으로 복잡해서 개미굴 같다고 이야기하는 우메다에 숙소를 잡았는데 난 항상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다꽁이 가자는 대로 다녀야 했다.
내 딸이지만 다꽁은 길을 잘 찾는다.
내가 운전을 하면서도 다꽁은 조수석에 앉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때는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나에게 미리 미리 길을 알려준다.
네비가 나에게 말을 하기 전에 다꽁이 먼저 확인을 해 주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네비게이션의 말을 듣고 핸들을 돌리면 항상 다른 곳을 향해서 네비게이션이 계속 길을 찾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곤 했다.
두어번 다녀 본 길은 절대로 혼자서 못 찾아 가고 서너번 이상 다녀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대형 아울렛은 절대로 혼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 금요일 동부산 아울렛에 혼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다꽁은 학교에 있었고 동생은 조카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았기에 그 전주에 구매했던 다꽁의 운동화 사이즈 교환을 위해 혼자 동부산 아울렛으로 향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렸기에 처음으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넣었고 내 차가 위치한 주차장 번호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렇지 않으면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울렛을 향해서 열심히 주차장을 가로질러 지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주차한 곳의 뒷편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음에도 난 주차장을 제법 가로질러 올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꽁의 운동화를 산 점포를 찾아서 1층을 두어번 돌았다.
분명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 조금 전에 지나간 길인데 어디가 어디인지 못 찾았다.
한참을 헤매다 2층에서 내려 봐야지 싶은 마음에 2층으로 올라갔더니 그 곳에 내가 찾는 매장으로 가르쳐 주는 화살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에 그 화살표를 따라 갔지만 결국 또 방향감각을 잃어 버려서 안내 지도를 보고 두어번 더 헤맨 다음 매장으로 갈 수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라 날씨가 선선했지만 내 등에는 땀이 제법 흘렀었다.
그러고도 지하 주차장 입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고 다꽁의 먹거리를 사기 위해 또 다시 지상을 헤매고 결국 평일 오후의 여유로운 쇼핑은 물건너 간 상황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헤매다 겨우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동부산 아울렛을 헤매면서 생각 했던 것이 내가 길을 못 찾는 건 아마도 주변에 집중하는 것이 부족한 때문인것 같았다.
길 자체나 움직인 방향을 머리속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눈에 들어 온 한 점을 기억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공간에서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을 그냥 흘려버리고 어떤 한 점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 사진에서 보면 바다가 있고 난간이 있으며 파란색 지붕과 붉은 가로등과 집들 그리고 저 멀리 나무와 뾰족지붕의 집 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녹색의 작은 통통배 하나만 기억 하는 거다.
그러니 이 주변을 여러번 지나가도 다른 건 기억에 없지만 저 배 하나는 기억에 남아 있으니 왔던 곳이구나라며 인지를 한다.
만약 그 상황에 저 초록색의 배가 이동을 한다면 아마 난 이 곳은 또 새로오는 곳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공간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딱 하나의 점만을 기억하니 길을 못 찾는 거다.
예전에 다꽁이 6살때 우연히 웩슬러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검사의 결과에 따른 상담을 할때 들었던 충격적인 한마디.
어머니 길치시죠? 다꽁이 공간지각 쪽 파트가 조금 낮네요. 이 부분은 유전인 경우가 많아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언어쪽은 학습으로 올릴 수 있지만 공간 지각은 학습으로 올리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아마 난 다꽁에게 수학 수업을 강요하지 않고 영어를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했었다.
조금이라도 쉽게 공부 하라고. 그런데 다꽁은 나보다 길을 잘 찾는다. 수학 점수는 엉망이지만.
아무래도 다꽁이 나보다 공간 지각력이 더 높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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